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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임재 안으로

해, 달 그리고 별들: 하늘의 징조들, 그 밖의 것들에 관하여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또 그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창세기 1:14-19).

 

창세기 1:14-19은 지구 회복의 넷째 날에 행하신 하나님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으며, 다섯째 날의 해양 생물과 공중의 새들의 창조, 그리고 이어서 여섯째 날의 동물 생물과 인간의 창조를 예견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일곱째 날에 인간이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대신하여 회복된 지구를 통치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창세기 1:20-28).

 

사탄과 그의 천사들(과거에 하나님께서 사탄을 지구의 통치자로 세우셨을 때 원래 사탄과 함께 배치되었던 천사들의 3분의 1)은 하나님의 지고한 권능과 권위에 반역하여 왕좌를 유지할 자격을 상실했으며(이사야 14:12-17; 에스겔 28:14-19; 요한계시록 12:3, 4), 그 결과 왕국은 파멸에 이르고 어둠이 왕국을 덮게 되었다(창세기 1:2a).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6일의 시간에 걸쳐 왕국을 회복하셨고, 그런 다음 현직 통치자와 그의 천사들을 대체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창세기 1:2b-28).

 

빛은 하나님의 회복 사역 첫째 날에 회복되었으나 넷째 날이 되어서야 태양 및 달과 연관되어 나타났다(창세기 1:3, 14-19). 태양과 달이 회복되기 전에 빛이 먼저 회복된 사실은 일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지만, 사실 전혀 당황할 일이 아니다. 빛은 태양의 본질적인 내부 부품이 아니다. 빛은 발광체들이 회복되기 전에 먼저 회복된 것이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에 이미 회복해 두셨던 빛을 취하셔서 넷째 날에 태양이 회복될 때 그것으로 태양을 감싸는 데 사용하셨다. 그리고 태양이 회복된 달에게 빛을 공급함에 따라 태양과 달은 둘 다 지구를 위한 발광체가 되었다. 태양을 형성하여 지구에 열을 공급하는 불타는 질량 덩어리는 그 자체로도 어느 정도의 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태양을 바라볼 때 눈이 부셔 태양을 직접 응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눈 부신 빛은 태양을 형성하는 불타는 질량 덩어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빛은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존재하게 하셨고, 넷째 날에 회복된 태양을 감싸는 데 사용하신 바로 그것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이 태양을 감싸고 있는 빛(발광체를 형성함)이 달(이차 발광체)에게 빛을 공급하는 것이다.

 

(지구 회복의 넷째 날에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확립하신 방식은 인간에게 타락 전 영광에 휩싸여 있었고 언젠가 다시 영광에 휩싸이게 될 인간의 몸에 대해, 혹은 현재 영광에 휩싸여 있는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얼마간의 이해를 제공해 준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회복하신 빛이 넷째 날에 회복된 발광체 중 하나를 감싸 안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은 타락 전 아담과 하와를 옷 입혔으며 언젠가 둘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의 하나님의 회복 사역에 의해 예표된 구속 이후에 인간을 다시 옷 입힐 것이다. 그리고 이 빛은 창세기 1장의 빛처럼 인간의 몸과 분리되어서도 존재할 수 있고 연관되어서도 존재할 수 있다[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에 휩싸인 몸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승천 때에 영광 안으로 영접되셨음을 유의해 보라, 누가복음 24:15-40; 디모데전서 3:16].

그런 다음 오늘날 태양을 감싸고 있는 빛의 밝기와 연관하여 이 영광의 밝기를 주목해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던 모습과는 달리 [누가복음 24:15-53], 이후 바울에게 영광에 휩싸인 몸으로 나타나셨는데 그 몸은 대낮의 태양보다 더 밝아 바울을 사흘 동안 눈이 멀게 만들었습니다 [사도행전 9:3-43; 26:13; 요한계시록 1:13-1].)

 

그리고 태양을 넘어 우리가 하늘에서 보는 별들은 빛에 관한 한 우리의 태양[중간 크기의 별인]과 같은 것일 수밖에 없지만, 인간이 직접 눈으로 응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니다. 오히려 인간은 그 불타는 질량 덩어리가 휩싸여 있는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은하계에만 수천억 개의 별이 존재하며 [약 2,000억에서 4,000억 개로 추정됨], 우리 은하계 너머에는 별들로 가득 찬 수십억 개의 은하계가 존재하는 이 전체 하늘은 우리의 태양이 영광에 휩싸인 인간의 몸의 과거 및 미래와 관련하여 제공하는 것과 동일하게 과거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해 준다[시편 104:1, 2; 19:1; 로마서 1:20; 고린도전서 15:41].)

 

하늘의 징조들

 

창세기 1:14-19에 나오는 넷째 날의 회복 사역을 마무리하시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태양과 달의 회복을 징조와 연관시키셨다 (창세기 1:14). 그리고 태양과 달의 회복에 별들이 함께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이후의 성경 구절들을 통해 볼 때 별들 역시 징조라는 개념에 포함될 것이다.

 

(창세기 1:16의 킹제임스 성경(KJV) 번역은 하나님께서 “두 큰 광명체”를 만드셨다는 진술로 시작하여 끝부분에 “그가 별들도 만드셨느니라”라는 진술로 끝나는데, 이는 부정확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번역이다. 하나님의 회복 사역은 태양과 달에 관한 것이었지 별들까지 포함된 것이 아니었다. 창세기 1:2a에서 어둠이 지구를 뒤덮었을 때 하나님께서 별들까지 어둡게 하실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별들의 빛이 지구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을 수는 있고 (실제로 그러셨을 수도 있음), 그것은 어쩌면 이집트의 재앙 동안의 흑암처럼 만져질 수 있는 종류의 어둠 곧 우울함의 어둠을 만들어냈을 수 있다, 출애굽기 10:21, 22].

 

킹제임스 성경 번역에 나오는 창세기 1:16 끝부분의 별들에 관한 진술은 하나님께서 이 시기에 별들 역시 회복시키신 것처럼 믿게 만든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에서 수정한 정확한 번역은 단순히 “그리고 별들이라”로 읽어야 한다. 즉 별들은 하나님의 회복 활동의 일부는 아니었지만 달에 더하여 얼마간의 빛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태양 빛을 반사하는 달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하다].

 

태양과 달과 별들이 성경에서 “징조”로 간주되고 사용되는 것과 관련하여, 사람은 그것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원리 안에 머물면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고 이해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예외 없이 성경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징조를 다루게 되어 성경 해석에 일대 혼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서 “징조(표적)”는 이스라엘과 관련이 있으며 변함없이 어떤 형태로든 신정 통치(theocracy)와 관련하여 이스라엘과 연관되어 있다(창세기 4:15; 17:11; 출애굽기 3:12; 4:8, 9, 17, 28, 30; 10:1; 31:13, 17; 민수기 14:11, 22; 신명기 26:8; 29:3; 34:11; 마태복음 4:17, 23-25; 12:38-40; 누가복음 24:21, 25-27; 요한복음 20:30, 31; 고린도전서 1:22). 이것이 바로 성경 전반에 걸쳐 “징조”가 변함없는 방식으로 제시되는 형태다. 그리고 만약 “징조”를 올바른 방식으로 다루고자 한다면 이는 정확하게(EXACTLY) 성경이 그 문제를 펼쳐 보이는 방식 그대로 행해져야만 한다. 성경에서 태양과 달과 별들이 이스라엘 및 왕국과 관련하여 징조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예로 창세기 37:9을 주목하고 이를 요한계시록 12:1에 진술된 내용과 비교해 보라.

 

“그가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세기 37:9).

 

“하늘에 큰 이적 [그리스어 세메이온, ‘징조’]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요한계시록 12:1).

 

창세기 37:9절은 요셉이 자신의 가족을 다스리는 것에 관한 내용으로, 그리스도께서 언젠가 이스라엘 집을 다스리실 것을 예표한다. 이것은 그 성취의 범위에 있어 천년왕국에 속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2:1은 환난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에 관한 내용으로, 한 여자로 묘사되어 있다(하나님께서 왕국을 염두에 두고 이스라엘을 다시 한번 대하실 때임). 그리고 그 징조는 이스라엘(관을 쓰고 해를 옷 입은 모습, 즉 중앙 정부 권력)이 모든 이방 민족들(달과 별들로 묘사된 하위 정부 권력들) 위에 세워지기 직전의 상황에 관한 것으로 메시아 시대 동안의 상태를 암시한다.

 

본문 전반에 걸쳐 은유들이 사용되었다(이사야 2:1-5).그리고 태양과 달과 별들을 정부 권력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는 이와 관련된 징조들은 이 책의 다른 곳과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마태복음 24:29; 마가복음 13:24, 25; 누가복음 21:25; 요한계시록 6:12, 13; 12:3, 4).

 

오늘날 징조에 관해 존재하는 혼란

 

앞서 언급한 내용은 성경이 천체나 다른 어떤 것과 관련된 징조들을 다루는 방식에 따른 사실들을 보여준다. 표적을 요구하는 자는 바로 유대인이요(고린도전서 1:22), 성경 전반에 걸쳐 유대인들과 관련하여 징조들이 사용되는 방식은 언제나 동일하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징조들은 언제나(ALWAYS) 어떤 형태로든 왕국과 관련된 이스라엘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오늘날 교파의 수많은 사람들은 말씀이 징조에 대해 말하는 바에서 완전히 벗어나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통해 주님의 재림의 임박성을 알려주는 징조를 찾고 있으며, 대개 그 문제를 이스라엘보다는 교회에 더 연관시키고 있다. 그리고 태양과 달과 연관하여 징조를 찾거나 주장하는 이 일은 종종 “블러드 문(핏빛 달)”으로 알려진 현상과 관련이 있다. 이른바 블러드 문이라 불리게 된 이 현상은 달의 개기월식과 관련된 것으로, 이 시기 동안 달이 붉은색 외관을 띠기 때문에 “블러드 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문제의 전말은 성경과는 아무런(NOTHING) 상관도 없는 자연 현상일 뿐이다. 그리고 더 잘 알았어야 마땅할 좋은 의도를 가진 이들이 자연계의 무언가를 취해 그것을 초자연적인 것(유대인의 절기들을 포함하여)과 정렬시키려고 시도하며, 그 사안의 전체를 초자연적인 징조의 현현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이 그 문제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대중이 더 잘 알았어야 할 이들에 의해 잘못 인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연적인 것을 초자연적인 것과 정렬시키려고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하고 계시지도 않으며 신정 통치와 관련하여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것은 더더욱 아닌 현 시기에 이것을 유대인의 절기와 연관시켜 시도하는 것은 참으로 누구도 속해서는 안 될 자리로 사람을 데려가는 행위다. 그러나 교파의 상황은 이토록 나빠졌다. 교파의 지도층은 일반적으로 더 나은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한 듯 보인다. 실제로 지도적 위치에 있는 많은 이들이 바로 그 블러드 문 현상을 추종하고 홍보하는 장본인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 아래 있는 형제들은 갈 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곳으로 통하는 똑같은 길로 인도되고 있다.

 

이 세대 지극히 초기에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던 그 누룩은 마태복음 13:33에서 그 파괴적인 작업을 수행해 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은 이 누룩이 온 덩어리가 전부 부풀 때까지 그 작업을 계속할 것임을 명백히 계시한다. 오늘날 세상에 만연한 거짓 가르침의 맹공격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ONE and ONLY) 보호책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 곧 진리에 대한 지식뿐이다. 이 말씀에 대한 지식에서 벗어난 여행은 오직 자기 자신주의 위험 부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