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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임재 안으로

가려느냐…? (Wilt Thou Go…?)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져진 모든 질문 중의 질문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하니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하였더라”(창세기 24:58).

 

창세기 24:58에서 리브가가 받았던 질문(“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과 그녀의 대답(“가겠나이다”)은 현재의 은혜 시대(dispensation) 동안 그 어떤 그리스도인이든 그 어떤 때에라도 직면하게 될 모든 문제 중에서 가장(MOST) 중요한 일의 핵심을 형성한다. 이 질문과 그에 따른 답변은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은 바로 그(VERY)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은 어떤 목적을 위해 구원을 받았으며 창세기 24:58은 바로 그 목적을 다루고 있다.

 

창세기 24장은 창세기 21장에서 25장까지 다섯 장에 걸쳐 더 광범위한 모형을 이루는 필수적인 부분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다섯 장은 모형과 실체의 구조 속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하여 다가올 메시아 시대 동안 인간이 누리게 될 실현된 축복으로 끝나는 그리스도와 이스라엘 그리고 교회사에 관한 연대기적 사건의 순서를 보여준다. 이 장들에서 각 인물과 사건의 모형은 다음과 같다.

 

• 이삭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예표한다.

•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하나님의 아내인 이스라엘을 예표한다.

• 이삭의 신부를 얻기 위해 먼 나라로 보내어진 “아브라함의 종”은 예수님의 신부를 얻기 위해 먼 나라(세상)로 보내어지신 성령을 예표한다.

• 아브라함의 종이 찾아낸 이삭의 신부인 “리브가”는 성령께서 현재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부를 예표한다.

• “아브라함의 이후의 재혼”은 하나님께서 향후 이스라엘을 그분의 아내로서의 이전 위치로 회복시키시는 것을 예표한다(이혼이 발생했었으므로 재혼이 필요함).

 

이러한 관점에서 각 장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창세기 21장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표하는 “이삭의 출생”을 다룬다.

창세기 22장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하는 “이삭을 제물로 바침”을 다룬다.

창세기 23장은 이스라엘이 잠시 옆으로 제쳐지게 됨을 예표하는 “사라의 죽음”을 다룬다.

창세기 24장은 오늘날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고 계시는 성령을 예표하는 “먼 나라에서 이삭의 신부를 찾는 아브라함의 종”을 다룬다.

창세기 25장은 이스라엘의 미래의 회복(재혼이 일어남)을 예표하는 그두라와 “아브라함의 재혼”을 다룬다.

 

창세기 24장의 문맥을 주목해 보라. 이 장의 사건들은 사라의 죽음(창세기 23장)과 아브라함의 재혼(창세기 25장)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그리고 실체에 있어서 이 사건들은 이스라엘이 과거에 잠시 제쳐진 시점과 미래에 회복될 시점 사이의 현재 은혜 시대 동안 일어나는 사건들을 예시한다.

 

성령께서는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을 위한 신부를 찾기 위해 세상에 와 계신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24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이 장은 구원 그 자체(per se)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구원의 목적에 관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의 신부를 구해오도록 종을 먼 나라로 보냈다. 그리고 그 종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기 전 아브라함은 그 신부 탐색이 오직(SOLELY) 자신의 백성 곧 “내 족속”이라 불리는 자들 중에서만 수행되어야 함을 맹세하게 했다(창세기 24:3, 4, 9).

 

그런 다음 그 종은 열 마리(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의 낙타에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싣고 이삭의 신부를 찾고 구해오기 위해 먼 나라로 떠났는데 그 신부는 반드시 아브라함 자신의 백성 중에서 나와야만 했다(창세기 24:10). 장차 신부가 될 리브가를 발견한 후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에게 “은패물과 금패물과 의복”을 주기 시작했다(창세기 24:53). 이것들은 종의 수중에 있던 아브라함의 재물들로부터 나온 것이었으며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에게 준 것들이었다(창세기 24:36; 창세기 25:5). 그리고 이 모든 재물은 종이 먼 나라로 가서 찾아내고 구해오도록 보내심을 받은 아들의 신부에게도 똑같이 속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실체에 있어서 앞서 언급한 이 모형은 지난 2,000년 동안 세상에서 정확하게(EXACTLY)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위한 신부를 찾고 구해오시기 위해 2,000년 전에 성령을 세상에 보내셨으며(사도행전 2:1-47) 성령께서는 그 모형과 완벽하게(PERFECT) 일치하여 그때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신부를 찾아오고 계신다.

 

이 은혜 시대 동안 성령의 최우선적인 과업은 모형과 완벽하게(PERFECT) 일치하여 제시되고 있는 그 제안(초청)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즉 성령께서 미래의 신부 후보에게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에게 주신 모든(ALL) 재물을 주시고 그 앞에 보여주시면서 아들의 다가올 통치 기간 동안 그 신부 후보의 것도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것과 같다(요한복음 16:13-15; 로마서 8:17-23). 그리고 그 탐색은 거의(ALMOST) 끝나간다. 이 은혜 시대는 거의(ALMOST) 그 과정을 다 달렸다. 성령께서 자신의 사역을 완수하시고 그 후 신부를 데리고 가실(휴거하실) 때가 거의(ALMOST) 우리에게 임박했다(창세기 24:60-67).

 

수용 또는 거부

 

하나님의 아들의 신부를 찾으시는 성령의 사역은 인간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성령의 사역 이후에 일어나는 후속 사역이다. 전자의 사역(위로부터의 거듭남을 통해 인간을 죽고 소외된 상태에서 건져내시는 사역)이 먼저 이루어짐으로써 성령께서는 후자의 사역(신부를 찾고 구해오는 일을 포함하는 사역)을 진행하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성령의 후속 사역은 전가된 사역의 핵심적인(CENTRAL) 목적과 관련이 있다.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라는 질문을 실체로 가져오면 이 질문은 오직(SOLELY) 하나님의 가족 안에 있는 자들 곧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지향되는 질문이다. 그것은 저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바라보며 성령의 현재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과 관련된 질문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그 사람의 깨달음에 성경 말씀을 열어주시도록 허락하는 것이며 성령께서 그 사람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도록 허락하는 것과 관련된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진리는 본문 맥락상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아버지의 것들을 중심으로만 돌 수 있으며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ALONE) 완전히 붙잡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다(고린도전서 2:9-14).

 

그리고 성령께서 이러한 방식으로 말씀을 열어주심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이 미래의 영광에 참여하라는 초청을 제안받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초청에 관하여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행할 수 있다. 그들은 초청을 받아들이거나(EITHER) 초청을 거부할 수도(OR) 있다. 그 초청을 수용하는 것은 훗날 그리스도의 신부의 일부가 되는 것(그리고 아들의 상속 유업을 아들과 함께 실현하는 것)과 연관되는데 이는 리브가의 수용이 그녀가 훗날 이삭의 신부가 되는 것(그리고 아들의 상속 유업을 아들과 함께 실현하는 것)과 연관되었던 바와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거부는 그 사람을 이 모든 것 중 그 어떤 것도 실현할 수 없는 위치에 남겨두게 될 것이다. 만약 리브가가 거부했더라면 그녀 역시 이삭과 그의 상속 유업에 대하여 정확하게(EXACTLY) 동일한 처지에 남겨졌을 것과 같다. 그러나 수용하든 거부하든 어느 쪽이든 간에 가족 관계 자체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리브가의 수용은 아브라함의 가족 내에서 그녀의 위치에 아무런(NO)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그녀가 거부했더라도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영원한 구원은 갈보리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성취하신 과거의 완성된 사역에 기초하여 성령이 행하신 과거의 완성된 사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영원한 구원은 전적으로 신성한 개입을 통해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완성된 사역이며 그 어떤 변화도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믿음을 통한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좋은 소식)이 한 가지라면 “이같이 큰 구원” 즉 “혼의 구원”(히브리서 2:3, 10:39)인 그리스도의 다가올 영광에 관한 좋은 소식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다. 그리고 이 은혜 시대 전반에 걸쳐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성령의 사역이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전자가 아니라 바로 후자(NOT the former, which the Spirit’s ministry centers around)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계시된 목적을 위해 구원을 받았고 오늘날 세상에서 성령의 중심 임무는 그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며 그 목적에 참여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각 개인 그리스도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그리스도인은 아들을 위한 신부를 구하기 위해 세상에 보내어진 성령 즉 초청이 확장되는 통로가 되시는 분과 함께 “이 사람과 함께 가거나(EITHER ‘go with this Man’)” 아니면 가기를 거부할 수도(OR) 있다. 이 결정은 그리스도인 혼자만의(ALONE) 몫입니다. 그리고 그가 내리는 결정은 단연코 광범위한(FAR-REACHING) 파장을 미칠 것이다.

 

목표 (The Goal)

 

물론 그 목표는 창세기 24장의 후반부에 제시되어 창세기 25장에 제시된 일들로 이어지는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신부 탐색의 성공적인 완료이며 그 뒤를 잇는 신부의 데려감(휴거)과 그 뒤를 잇는 혼인이다. 그리고 이것은 창세기의 모형에서 보여지는 바와 정확하게(EXACTLY) 일치하여 이스라엘의 회복과 미래의 축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동시에 지구상에서 데려감을 당할 것인데 이는 리브가와 그녀를 수행하는 여종들이 이삭을 만나기 위해 열 마리의 낙타를 타고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보여진다. 이는 완전함을 의미하며 즉 그들 모두가[ALL] 나아갔음을 뜻한다 [창세기 24:10, 61]. 그러나 이삭을 만날 때 너울[veil]을 취하여 자신을 가린 것은 오직 리브가 혼자[ALONE]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만날 때 오직 신부만이[ALONE] 입게 될 혼인 기약을 나타내는 예복만을 참조할 수 있기 때문이 [창세기 24:64, 65; 요한계시록 19:7, 8].)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을 위한 신부를 구한 후 그는 먼 나라에서 신부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이삭은 리브가를 맞이하기 위해 그의 집에서 나왔다. 그들은 그녀의 집과 그의 집 사이에 있는 한 장소에서 만났고 그 후 그들은 그의 집으로 갔으며 거기서 그녀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 (창세기 24:61-67).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성령께서 신부를 구해오신 후 성령께서는 지구상에서 신부를 데려가실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하늘에서 나오실 것이다. 그들은 신부의 집과 그분의 집 사이에 있는 한 장소에서 만날 것이며 그 후 그들은 그분의 집으로 갈 것이고 거기서 신부는 그분의 아내가 될 것이다(데살로니가전서 4:14-17; 요한계시록 1:10;, 4:1, 2; 19:7).

 

그 후에야 창세기 25장에 계시된 바가 성취될 수 있다. 메시아의 축복이 도래할 것이며 온 피조물이 바라보도록 그분의 동반자 여왕(consort queen)과 함께하는 아들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 (시편 24:1-10; 이사야 2:1-4; 요한계시록 20:1-3a).

 

현재의 신부 탐색과 그리스도의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구속받은 인간을 위해 설계하신 가장 위대한 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아들이 모든 권능과 영광 속에서 계시되시는 그날에 그분과 함께 왕좌의 자리를 차지하며 그분의 아들과 함께 공동 상속(co-inherit)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시하시기 위해 세상에 보내어지신 것이 바로 이(THIS) 영광과 공동 후사(co-heirship)의 신분이다. 신부를 찾는 탐색이 완료될 때까지는(UNTIL) 아들의 다가올 영광에 대한 계시가 계속될 것이며 초청은 계속 열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BUT), 그 탐색이 완료될 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