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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임재 안으로

변형 (메타모르포시스Metamorphosis)

 

 

성령의 변화시키는 역사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신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이 구절에는 부정적인 명령에 이어 긍정적인 명령이 뒤따른다. “본받지 말고… 오직 변화를 받아…”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본받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순스케마티조(sunschematizo)다. 이는 전치사 ‘순(sun, ~과 함께)’이 ‘개요, 도표’를 뜻하는 단어 스케마(schema)의 동사 형태 앞에 접두사로 붙은 합성어다. 영어 단어 ‘scheme(계획, 스키마)’는 이 헬라어 단어 스케마schema를 음차한 형태이며, 도식적인 개요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문맥상 순스케마티조에 내재된 생각은 그리스도인이 현재의 세대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설계하거나 도표화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현재의 세대 동안에는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의 통제와 지배 아래 이방 민족들이 지구를 다스리는 세상 왕국이 존재한다. 타락한 인간은 죄의 저주 아래 있는 지구를 다스리고 있으며, 이는 통치할 자격을 스스로 박탈당한 자(사단)의 직접적인 지배 아래서 이루어지고 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현재 왕국의 구조에는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사탄과 그의 천사들도 제자리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인들도 제자리에 있지 않으며, 이스라엘도 제자리에 있지 않고, 이방 민족들도 제자리에 있지 않다.

 

이러한 상태는 부분적으로는 지난 6,000년 동안(모든 피조물이 죄의 속박 아래 놓이게 된 아담의 타락 이후로) 변함없이 지속되어 왔으며, 전체적으로는 지난 2,000년 동안(교회의 시작 이후로) 변함없이 지속되어 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그 왕국을 취하실 때까지는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탄과 그의 천사들의 정당한 자리는 결박되어 무저갱에 던져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정당한 자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부터 다스리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정당한 자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된 땅에 거하며 민족들의 머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방 민족들의 정당한 자리는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에게 복종하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공동 상속자들(그리스도인들)의 다스림을 받는 위치에서 각자의 땅에 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왕국을 취하실 때,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스러운 따르는 자들이 하늘로부터 땅을 다스릴 것이다.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이 시기 전에 하늘에서 쫓겨나) 결박되어 무저갱에 감금될 것이며(천년왕국 끝에 있을 종결 사건들에서의 역할을 기다림), 저주는 풀릴 것이고, 회개하고 개종한 유대 민족은 그들의 땅에서 민족들의 머리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그때 이방 민족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복종하는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 그분과 함께 공동 상속자로 다스리는 그리스도와 자들의 지배 아래 있게 될 것이다.

 

현재 “온 세상은 악함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다(요한일서 5:19b).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신분적 위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린도후서 5:17; 에베소서 2:12-15). “그리스도 안”과 “악한 자 안”이라는 이 두 위치는 서로 정반대로 대립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분명하게 명령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한일서 2:15a).

 

왜 그런가?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전체 시스템은 그의 통제와 영향력 아래 있다. 그리고 세상이 깨닫든 못 깨닫든, 현재 통치자(사탄)의 프로그램, 목표, 야망, 열망들이 현재 시스템 내에서 수행되고 있다. 이것들은 사탄이 현재의 위치에서 제거되기 직전, 다가올 환난 동안 죄의 사람(적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 모두 정점에 달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현재 세대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결과적으로 “악한 자 안”에 있는 자들이 차지한 영역으로 내려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들의 높은 부르심을 더럽히는 셈이 된다.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분리된 곳에 계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으로부터의 이러한 거절과 분리를 공유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이 현재 세대의 일에 관여하면서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거절과 분리를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변화를 받으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명령에 이어, 그리스도인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변화를 받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메타모르포오(metamorphoo)다. 이 단어는 영어 단어 ‘metamorphosis(변태, 변형)’가 유래된 단어다. 이 단어는 개인 자신의 힘과는 완전히 동떨어져서 일어나는 내적인 변화를 가리킨다. 개인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변형(metamorphosis)을 스스로 일으킬 힘이 없다.

 

고린도후서 11:13-15에서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transformed)”하고 그의 일꾼들도 “의의 일꾼으로 가장(transformed)”한다고 말한다. 헬라어 본문에서 고린도후서 11:13-15에 사용된 “가장하다(transformed)”라는 단어는 로마서 12:2의 단어와 다르다. 고린도후서 11:13-15에 사용된 단어는 메타스케마티조(metaschematizo)로, 외적인 변화를 가리키며, 문맥상(고린도후서 11:13) 이 변화는 개인 자신의 힘을 통해 일어난다.

 

이처럼 사탄은 내적인 변화 대신 외적인 변화를 대체함으로써 성령의 역사를 모조(위조)하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사(가짜) 변화의 성격과 출처는 종종 인식되지 못한다.

로마서 12:2의 변화를 스스로 가져오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변형(metamorphosis, 내적 변화)이 아니라 메타스케마(metaschema, 외적 변화)를 낳을 뿐이다. 위로부터 거듭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 안에서 일을 시작하셨으며,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빌립보서 1:6) 그 일을 계속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편에서의 그 어떤 노력도 성령께서 이 변화를 이루시는 데 도움을 줄 수 없다.

 

인간의 방식은 인간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어떤 일을 끊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영성을 추구하며, 그 결과로 메타스케마(외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인간이 수동적인 상태에 있고 하나님께서 개인 안에서 역사를 행하셔서 궁극적으로 변형(metamorphosis)을 만들어내신다.

 

교파 단체들이 형성해 놓은 ‘하라, 하지 말라, 금기사항’ 등의 끝없는 목록은 변형(metamorphosis)이 아니라 메타스케마(외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 성령 하나님께서 로마서 12:2의 변화를 가져오시는 것을 도우려는 그리스도인의 어떠한 노력도 언제나 거짓 영성(유사 영성)을 낳을 뿐이다. 하나님의 방식은 개인의 힘을 통해 이루어지는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내적인 변화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본문에 따르면, 이 내적인 변화인 변형(metamorphosis)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일어난다.

“새롭게 함”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단어 아나카이노시스(anakainosis)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앞선 동사(“변화를 받으라 [변형]”)의 작용은 지속적인 새로워짐의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고린도후서 4:16에서 우리는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새로워지고 있도다’]”라는 말씀을 듣는다. 이 새로워짐의 과정은 이 땅에서의 나그네 길의 전 기간 동안 매일같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

골로새서 3:10에서 우리는 마음의 새로워짐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듣게 된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 ‘새로워지고 있는’] 입은 자니라.”

 

이 구절에 있는 “지식”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라. 지식을 뜻하는 일반적인 헬라어 단어는 그노시스(gnosis)이지만, 골로새서 3:10에 사용된 단어는 에피그노시스(epignosis)다.

 

이 단어는 지식(gnosis)에 접두사 에피(epi, ~위에)가 붙은 것이다. 따라서 에피그노시스는 “지식 위의 지식”, 즉 “성숙한 지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새롭게 하심을 입은”으로 번역된 단어는 아나카이노오(anakainoo)—로마서 12:2와 고린도후서 4:16에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의 과거 분사이며, “새로워지고 있는”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 속에서 변형을 일어내시도록 할 수 있는 이 성숙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동화(흡수)시키는 것을 통해서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계속해서 불어넣으시도록 해야 한다. 살아 있고 하나님의 숨결로 지어진 말씀이 인간의 구원받은 영 속으로 흘러 들어오도록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변형(metamorphosis)도 있을 수 없다.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받음으로써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져 삶 속에서 변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현재 영혼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방식이다.

 

야고보서 1:21과 베드로전서 2:2에서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받는 것 앞에는 순결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내버리는 것”이 선행된다는 점에 주목하라. 로마서 12:2의 변형도 마찬가지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이 세대를 본받는 것을 멈추고’]”라는 단어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단어보다 먼저 나타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 변형을 가져올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받기 전에,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는 그것들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따라서 로마서 12:2, 야고보서 1:21, 베드로전서 2:2는 모두 능히 “너희 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받기 전에 순결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내버리는 것에 관하여 동일한 것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내적인 것이다. 그러나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성령의 역사가 정점에 달할 때에는, 그 변화에 외적인 것도 포함될 것이다.

 

이 변형(metamorphosis)은 이 정점에 달하는 외적인 변화 없이는 실제로 완성될 수 없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빌립보서 1:6) 것이다. 인간이 “이 사망의 몸”(로마서 7:24)을 벗어버릴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낮은 몸을 변하게 하사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되게 하실”(빌립보서 3:21a) 날이다.

이 변형의 부분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마태복음 17장에 제시되어 있다.

 

그날에

 

마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변형되셨을 때 산 위에서 일어났던 일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표(미리보기)다. 로마서 12:2에서 “변화를 받다”로 번역된 것과 동일한 헬라어 단어(메타모 포오metamorphoo)가 마태복음 17:2에서는 “변형되사(transfigured)”로 번역되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산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다. 모세와 엘리야도 (역시 변형된 채로) 나타나 그분의 임재 가운데 섰다. 마태복음 16:28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 중 몇 사람이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계시하셨다. 그리고 마태복음 17:1-5에서 엿새 후에, 곧 일곱째 날에 특정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았다.

 

“엿새(육 일)”(마태복음 17:1)는 ‘인자의 날(Man’s Day)’을 구성하는 전체 시간을 예표한다. ‘6’은 인간의 숫자다. 이 6일은 아담의 창조로부터 메시아 왕국의 시작까지 이어지며, 이 날들은 각각 그 길이가 1,000년이다(베드로후서 1:15-19; 3:5-8). 이 6,000년의 기간이 인간의 날을 구성하며, 인간의 날이 끝날 때 ‘주의 날(Lord’s Day)’이 시작될 것이다.

 

아담의 창조로부터 날짜를 계산하여 일곱 번째 1,000년의 기간이 주의 날을 구성할 것이다. ‘7’은 하나님의 숫자다.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엿새 후에”—6,000년 후에—일 것이다.

 

“높은 산”(마태복음 17:1)은 다가올 왕국을 예표한다. 성경에서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 ‘산’은 왕국을 가리킨다(시편 2:6; 에스겔 28:14; 다니엘 2:35). 우리 주님의 다가올 왕국은 그냥 아무 산으로나 일컬어지지 않고, “높은 산”으로 일컬어진다.

 

예수님은 변형된 몸으로 나타나셨다. 모세와 엘리야도 예수님과 함께 역시 변형된 몸으로 나타났다. 모세는 죽었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자였다. 엘리야는 결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채로 땅에서 옮겨진 자였다.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나온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자연적인(육적인) 몸으로 나타났으며 산 아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높은 곳에 올려졌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인 “빛난 구름”이 그들 모두를 덮었다.

 

다가올 왕국에서 예수님은 이와 똑같이 변형된 몸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모세와 (죽음을 보지 않고 땅에서 옮겨진) 엘리야가 변형된 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났던 것처럼, 미래의 그날에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변형된 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날 것이다.

 

주님께서 친히 교회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위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데살로니가전서 4:16b, 17a).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할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한 그리스도인들(모세로 예표됨)과 결코 죽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엘리야로 예표됨)로 구성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베드로, 야고보, 요한으로 예표됨)은 자연적인(혼적인) 몸을 입고 이 땅에 있을 것이다. 이 제자들이 산 아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높은 곳에 올려졌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모든 민족들 위에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덮었던 하나님의 영광인 “빛난 구름”이 이스라엘에게 회복될 것이다.

 

어느 날 주님이 그분의 교회를 위해 다시 오실 때, 성령께서는 그 변형(Metamorphosis)을 완성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망의 몸”에서 건짐을 받아,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생명을 주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리를 가진 몸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네샤마(Neshamah, ‘숨결’)(창세기 2:7)—곧 성령님 친히—께서 변형의 완성 속에서 이 생명을 제공하실 것이 (고린도전서 15:4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