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민수기에 나타난 모세의 행동의 영적 의미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출애굽기 17: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민수기 20:7, 8, 11).
출애굽기 17:6의 반석은 유월절 밤 애굽에서 일어났던 일을 되돌아보게 한다. 유월절 어린 양들이 죽임을 당한 것과 반석이 처진 것 둘 다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처지신 것을 예표하다. 그러나, 출애굽기 12장에서 피를 바른 후에 뒤따랐던 일들—유월절 어린 양을 먹는 것, 물을 마시는 것, 또는 요한복음 6:53-56에서 피를 마시는 것에 대한 언급—은 처음 난 것(장자)의 죽음 그 이상의 일들과 관련이 있었다.
그 일들은 과거의 구원이 아니라, 미래에 실현될 현재의 구원과 관련이 있었다. 모형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과 신정정치 안에서 지상의 땅에 있는 미래의 기업을 실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실체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애굽이 예표하는 바인 ‘세상’으로부터의 구원과 신정정치 안에서 천상의 땅에 있는 미래의 기업을 실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미래의 실현을 앞둔 이 현재의 구원과 관련하여, 성소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재 사역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지상 성소에서 행한 아론의 대제사장 사역의 원형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 사역을 수행하고 계신다 (갈보리에서 그분의 완성된 사역 이후에, 그분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이후에, 이스라엘이 유월절 어린 양을 죽인 이후에).
성막, 제사장 사역
지상의 것, 하늘의 것
애굽에서 처음 난 자들이 죽은 지 일 년 만에 시내 산에서 세워진 성막의 상징 안에서, 갈보리에서 행하신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과 성소에서 행하시는 그분의 현재 사역은 이스라엘의 두 절기—유월절과 속죄일—에 행해진 제사와 활동들을 통해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레위기 23:4, 5, 27-32). 다른 제사들이 그리스도의 이 동일한 두 가지 사역에 대해 서로 다른 점들을 묘사하고 있지만, 반드시 분별해야 할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은 이 두 절기 동안 일어나는 활동들을 통해 명백히 나타난다. 성막이 세워진 후, 유월절 어린 양들은 성막 뜰 안, 번제단 북쪽, “여호와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먹어야 했다(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서 행했던 출애굽기 12장에서와는 다르다[레위기 1:11; 신명기 16:1-7; 욥기 26:7; 시편 75:6, 7]).
그리고 죽임을 당한 어린 양들의 피는 각 집의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가 아니라 제단에 뿌려졌다. 그러나, 동물 제물(번제단 북쪽, “여호와 앞”이라는 유월절 어린 양과 동일한 장소에서 죽임을 당한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가 대제사장에 의해 지성소 안으로 들여보내진 것은 오직 속죄일뿐이었다. 그리고 이 피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와는 달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려졌다(레위기 16장).
(속죄일에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수송아지 한 마리, 염소 두 마리, 숫양 두 마리를 취했다. 대제사장은 먼저 자신과 다른 제사장들을 위해 수송아지를 제물로 드렸고, 그 피를 속죄소 위와 그 앞에 일곱 번 뿌렸다. 그 후 백성들의 죄를 위해 [제비 뽑힌] 염소 한 마리를 제물로 드렸고, 그 피를 다시 속죄소 위와 그 앞에 일곱 번 뿌렸다. 그런 다음 대제사장은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온 이스라엘의 죄를 자백했다. 그 후 그 살아 있는 염소는 한 사람의 손에 맡겨져 광야의 한 장소로 보내져 그곳에 버려졌으며, 그 염소는 결코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뒤 두 마리의 숫양이 번제로 드려졌는데, 한 마리는 제사장들을 위함이요 다른 한 마리는 백성들을 위함이었다.)
따라서 레위기 23장의 절기들이 예표하는 범위 안에서, 유월절에 흘려져 제단에 뿌려진 피와 속죄일에 흘려져 지성소의 속죄소 위와 그 앞에 뿌려진 피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그리스도의 사역을 말해준다. 첫 번째 것은 갈보리에서 성취하신 그분의 완성된 사역을 가리키고, 두 번째 것은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서 행하시는 그분의 현재 사역을 가리킨다.
유월절의 제사들은 처음 난 자의 죽음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출애굽기 12장에 묘사된 사건들 속에서 생생하게 나타난다(애굽에 있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과 연관되었으나, 나중에는 성막과 연관되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는 동안에는 집이 성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러나 시내 산에서 성막이 지어짐으로써, 국가적 성소와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장소가 비로소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속죄일의 제사들은 죽임을 당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이미 신뢰하여 구원받은 백성들이 더러움으로부터 정결하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이는 성막의 지성소에서 행해진 아론의 대제사장 사역을 둘러싼 사건들 속에서 생생하게 나타나는 바이다.
(더러움으로부터의 정결함, 즉 오직 대제사장만이 제공할 수 있는 성격의 정결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이유는,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피를 신뢰한 자라 할지라도 옛 죄의 본성이 거하는 몸 안에 여전히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몸을 입고 죄를 짓기 쉬웠기 때문에, 더러움으로부터 정결하게 될 필연적인 수단이 제공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실체에서도 이것은 정확히 똑같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현재의 경륜 동안 아론이 지상 성소에서 행했던 사역의 원형으로서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 사역을 수행하고 계시는 이유다.
그리스도께서는 레위 지파 출신이 아니심에도 불구하고 아론의 사역으로 예표된 대제사장 사역을 수행하실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분께서 유대인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이 사역을 수행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모세 율법 체제 아래 있지 않은 백성들을 위해 이 사역을 수행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올 때, 제사장적 관점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필연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날에 그분은 완전히 다른 반차의 제사장 사역, 즉 그분의 왕권과 결합된 제사장 사역을 행사하실 것이다. 그날에 그분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위대한 왕-제사장으로 나오실 것이다 [창세기 14:17-20; 시편 110:4; 히브리서 7:11-21]). 갈보리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현재 하늘 성소의 속죄소 위에 있다. 그리고 속죄소 위에 있는 이 피는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흘리신 바로 그 피가 가능하게 한 바를 이전에 신뢰한 자들,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을 위해 대제사장 사역을 행사하실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 현재 사역은 구원의 과거 측면(영의 구원)이 아니라, 구원의 현재 및 미래 측면(혼의 구원)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출애굽기 17:6의 반석에서 흘러나온 물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출애굽기 12장의 사건들, 즉 처음 난 자의 죽음을 넘어선 일들과 관련이 있었다. 고린도전서 10:4에 따르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이 반석으로부터 마셨다—이들은 이전에 애굽에서 죽임을 당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구원받았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반석으로부터 마시는 것은 그들이 부르심의 목표—그들 앞에 놓인 땅으로 들어가는 것—를 향해 나아갈 때, 그들의 구원(출애굽)의 현재 및 미래 측면과 관련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의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해 반석을 치는 행위가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유월절 어린 양을 죽이는 것과 관련된 애굽에서의 이전 사건들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 양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고, 모세는 약 한 달 후 광야에서 반석을 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반석을 치는 것 — 모형에서 실체로
이제 질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유월절 어린 양을 죽이고 반석을 치라고 명령하셨는데, 왜 그로부터 약 1500년 후에 유대인들이 실체 속에서 유월절 어린 양을 죽이고 실체속에서 반석을 쳤을 때, 그토록 비난을 받았을까?
유월절 어린 양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졌고, 어떤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이 죽이도록 주어졌다.
누가 그리스도를 죽였는가에 대해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논쟁은 성경을 통해 쉽게 해결된다. 그리스도는 유월절 어린 양이셨고, 오직 이스라엘만이 이 어린 양을 죽일 수 있었다. 나아가 성경은 이 행위를 분명히 이스라엘의 책임으로 돌린다 (사도행전 2:23, 36; 3:13-15; 7:52).
유월절 어린 양은 죽임을 당해야 했고, 반석은 처져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모형 안에서 이 일이 행해질 것을 명령하셨다. 이것이 바로 유월절 어린 양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이유다! 그것은 유대 백성들이 죽이도록 주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실체 안에서 어린 양을 죽이고 반석을 쳤을 때—비록 그들이 한 사람을 죽인 것일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 구약 성경은 한 사람이 이 직무를 위해 죽을 것을 분명히 가르쳤기 때문이다 [창세기 3:6; 4:8; 22:2; 이사야 53:1-12])—다시 말해, 왜 그들은 그 행위에 대해 그토록 비난을 받았을까?
유대 백성들이 어린 양을 죽이고 반석을 친 후에 베드로와 스데반이 그들에게 한 말을 주목하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사도행전 2:23).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사도행전 7:52).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어린 양을 죽였고 반석을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행위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어떻게 이스라엘이 “법 없는(악한) 손으로” 이 일을 행한 유죄가 될 수 있는가? 혹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행위 때문에 “살인자”로 불릴 수 있는가?
게다가 그 나라는 현재 이 행위로 인해 하나님의 눈에 부정하게 여겨지고 있다.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바를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시는 것일까?
(부정을 초래하는 죽은 사체를 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한 기록—하나의 모형을 형성함—에 주목하라. 유대 백성들은 그들의 메시아의 죽은 사체와의 접촉을 통해 부정한 상태로 간주됩니다. 그리고 사체를 만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셋째 날이나 일곱째 날에만 정결하게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민수기 19:11-22],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유대 백성들은 갈보리 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셋째 날 [셋째 천년기], 또는 지구의 회복과 인간의 시작으로부터 시작되는 일곱째 날 [일곱째 천년기]에야 비로소 그들의 더러움으로부터 정결하게 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유죄 선언을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단순히 유월절 어린 양을 죽이고 반석을 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얽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모세가 그의 사역 말기에 두 번째 반석을 친 사건들 속에서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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