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다시 홀(왕권)을 잡게 될 그 미래의 때
“이방 나라들아, 깨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오라.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에 있는 모든 이방 나라를 심판하리라.
너희는 낫을 대라.
곡식이 익었도다.
내려와서 밟으라.
포도주 틀이 가득하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크도다.
결정의 골짜기에 무리와 무리가 많음이여,
결정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라.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빛을 거두리라.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음성을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소망이 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힘이 되시리라”(요엘 3:12-16).
모세 시대(주전 15세기)부터 느부갓네살 시대(주전 7세기 말 바벨론 왕)까지 지상에는 신정(神政, theocracy)이 존재했다. 팔백 년이 넘는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의 장자 — 이스라엘(출 4:22, 23)이 장자권을 행사하며 홀(sceptre)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팔백 년이 지난 느부갓네살 시대에,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상황을 그렇게 이끌어 가심으로 이스라엘은 홀을 놓을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신정도 끝났다.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가져오신 데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이유: 수백 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불순종.
목적: 결국 그들의 불순종에 대해 이스라엘로 회개하게 하는 것.
일단 이스라엘이 홀을 놓은 후에는,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가져오신 목적을 이루실 때까지 이방 나라들이 홀을 계속 잡고 있을 것이다. 오직 그때가 되어야 상황이 바뀔 것이다. 일단 이스라엘이 홀을 놓은 후에는,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가져오신 목적을 이루실 때까지 이방 나라들이 홀을 계속 잡고 있을 것이다. 오직 그때가 되어야 상황이 바뀔 것이다.
이방인의 때
이방 나라들이 홀을 잡고 있는 기간을 성경에서는 “이방인의 때”(The Times of the Gentiles)라고 부른다. 이 기간은 앞서 말한 대로 약 2,600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께서 이 왕을 통해 유대 민족을 그들의 땅에서 뿌리 뽑으시고 구약의 신정을 끝내게 하셨다. 그러나 신정은 언젠가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될 것이며, 그에 따라 이방인의 때도 끝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선지서에 나오는 여러 주제 중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 선지서의 가장 중심적이고 주요한 주제이다. 모든 성경은 이 다가오는 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먼 미래의 어떤 때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가까운 미래, 니므롯이 예표하는 바벨론의 마지막 왕의 시대에 이루어질 일이다(창세기 10:8-10; 11:1-9). 니므롯의 왕국에 일어났던 일이 그 사람의 왕국에도 일어날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내려오셔서 살펴보시고 그 왕국을 파괴하실 것이다. 이것은 예표에 이미 정해져 있으며, 반드시 실체에서 일어나야 한다. 다만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파괴가 최종적이고 완전할 것이며, 바벨론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예레미야 51:20-26; 다니엘 2:34, 35, 44, 45).
과거에 아브라함이 그때에 등장했던 것처럼, 아브라함의 후손들도 이 미래의 때에 다시 등장할 것이며, 그때 일어나는 일들은 창세기에 있는 전체 예표대로 정확히 일어날 것이다(창세기 11:10-32).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어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것은 수세기와 수천 년 동안 그대로 놓여 있었으므로, 이제 일어나려는 일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어떤 사람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신정의 간략한 역사
느부갓네살 시대 이전 약 팔백 년 동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된 땅에는 신정이 존재했다. 신정은 출애굽 후 약 일 년 만에 시나이 산에서 시작되었다(성막이 완성되고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을 때, 출애굽기 40:1-38). 그리고 약 사십 년 후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 그 땅에 들어간 후(주전 약 1,400년)에 그 땅에 자리 잡았다.구약의 신정은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에 최고의 절정을 이루었으나, 하나님께서 신정을 위해 예비하신 높이에는 결코 미치지 못했다.
그 후 솔로몬 왕이 죽은 후(주전 약 925년), 신정 곧 왕국에 분열이 일어났다(주로 지도권 문제를 둘러싼 분쟁 때문에). 왕국은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었다. 두 지파(유다와 베냐민)는 예루살렘에 남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통치를 받았다. 나머지 열 지파는 땅의 북쪽에 정착하여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고 여로보암의 통치를 받았다.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북쪽 왕국)가 이어지며 회개에 대한 새로운 부르심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 사역 당시 갈멜 산에서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왕국 전체가 계속 악화되었는데, 특히 북쪽 왕국이 남쪽보다 더 심했다. 사마리아에서는 단 한 명의 경건한 통치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쪽 왕국은 주전 8세기 후반, 남쪽 왕국은 주전 7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스라엘 자손의 죄악의 잔이 가득 차게 되었다(창 15:16). 주전 약 722년에 하나님께서 당시 이방 강대국이었던 앗수르를 허락하셔서 북쪽 열 지파를 사로잡기 시작하셨다. 그로부터 1세기 조금 넘게 지난 주전 약 605년에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앗수르 제국을 정복한) 당시 이방 강대국 바벨론을 허락하셔서 남쪽 두 지파를 사로잡기 시작하셨다. 이 후자의 포로는 오랜 기간(약 20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주전 약 586년에 바벨론이 시작한 일을 완성할 때 성전에서 영광이 떠나가며 신정이 끝났다(에스겔 10:4, 18; 11:22, 23). 그때부터 이방 나라들이 홀을 잡은 이방인의 때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까?
이방인의 때가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성경에 여러 번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이 기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손에서 홀을 빼앗아 이방 나라들의 손에 맡기시고, 자신의 백성을 그 땅에서 뿌리 뽑아 홀을 잡은 그 나라들 가운데 흩으신 목적을 이루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나라들의 머리가 되어 나라들을 복음화하고 복을 주던 대신, 이제는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고, 나라들에 대한 복음화와 복도 보류되었다. 그뿐 아니라 유대 민족은 점점 더 나라들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 상황을 허락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빠르게 다가오는 날 — 다가오는 환난, 다니엘의 아직 성취되지 않은 칠십째 주 — 에 유대 민족은 극도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조상의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데가 없게 될 것이다. 이는 다가오는 환난 후반부에, 사탄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요한계시록 13:2b)를 준 그 사람을 통해 지상에서 유대 민족을 멸절시키려 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그 날, 곧 매우 가까운 미래에, 하나님께서 2,600년 전에 가져오신 일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다. 유대 민족은 회개의 자리로 인도될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상태와 위치 때문에 나라들 가운데 복음화와 복이 보류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계획과 목적에 비추어 현재 세상에서 제자리를 벗어나 있지만, 그 민족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비록 앞의 면에서는 완전히 제자리를 벗어났지만]는 그 민족의 부르심과 연결된 어떤 것들이 나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최근 하나님께서 과학적 발견, 특히 의학 분야에서 사용하신 수많은 유대인들을 보라. 유대인이 직접 관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유대 민족이 빠질 수는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나라들을 보시고 다루시기 때문이다[신명기 32:8-10; 에스겔 5:5; 스가랴 2:8].
또한 현재 2,000년 시대 동안의 모든 전도 노력도 유대 민족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다”(요한복음 4: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새 사람은 유대인 구주를 가지고, 유대인 책을 사용하며, 이미 존재하는 유대인 뿌리에 접붙임을 받았다. 오늘날 이 새 사람은 유대인에게뿐 아니라 나라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데, 이는 오직 유대인들이 계속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유대 민족이 완전히 제거된다면, 전 세계 상황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 에덴동산에 있었던 것과 매우 비슷하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9)라고 물으신 질문이 이제 전 세계 나라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나라들을 보시고 다루신다.]
이스라엘이 현재와 같은 상태임에도 이런 긍정적인 상황이 존재할 수 있다면[그리고 실제로 존재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일을 이끌어 가셔서 유대 민족이 조상의 하나님께 회개하며 부르짖게 될 때, 그 후의 상황은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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