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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임재 안으로

거짓 교사들 / 그들의 정체, 그들의 메시지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사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다. 이때 그들은 ‘그의 영광을 보았다’(마태복음 17:1-5; 누가복음 9:32). 그리고 이 사건은 베드로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쳐서, 30여 년이 지난 후 주님의 재림과 그분의 왕국 설립(베드로후서 1:1-15)을 앞두고 그리스도인의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자 할 때, 베드로는 수년 전 그리스도와 함께 산에 있었을 때 자신과 야고보, 요한이 보았던 것을 환기시켰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하게 꾸민 신화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헬라어 원문상 최상급, ‘...그의 가장 위대한 왕적 장엄함의 목격자들’]을 친히 본 자다.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다.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다”(베드로후서 1:16-18).

 

그런 다음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예언의 말씀(베드로후서 1:19-21)에 대해 언급한 후, 거짓 교사들에 대한 논의와 경고로 넘어간다(베드로후서 2:1-22). ‘멸망하게 할 이단’베드로후서 (2:1)을 끌어들이는 거짓 교사들을 언급하기 전 논의 중인 주제는 왕국의 말씀(베드로후서 1:1-21)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언급이 끝나는 부분에서도 다뤄지는 주제이기도 하다(베드로후서 3:1, 2; 1:12-15).

 

거짓 교사들 — 과거

 

문맥을 유지하기 위해, 베드로가 언급한 거짓 교사들이 논의의 주제인 ‘왕국의 말씀’과 관련하여 거짓 교리를 선포하는 교사들이었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현재 이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구원에 관한 거짓 교리가 아니라, 혼의 구원(the saving of the soul)과 관련된 거짓 교리를 선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거짓 교사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아니었으며, 무지하여 이 거짓 교리를 선포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이전에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헬라어, 에피그노시스(epignosis), ‘성숙한 지식’]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이기기보다는(요한계시록 2, 3장)] 지게” 교사들이었다(베드로후서 2:20; 1:4).

 

고린도전서 2:14에 따르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헬라어, 그노시스(gnosis)]조차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들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다(고린도전서 2:9-13). 그러나 베드로후서 2:20에서 이 거짓 교사들은 단순한 기초적 지식을 넘어, 말씀에 대한 성숙한 이해에 이른 것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성경적 관점에서 이 거짓 교사들을 구원받은 자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2:20에 사용된 에피그노시스(‘성숙한 지식’)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혼의 구원, 즉 왕국의 말씀에 관한 성경적 교리와 관련된 문맥에서 사용된다(에베소서 1:17; 4:13; 빌립보서 1:9; 골로새서 1:9, 10; 2:2; 3:10; 디모데전서 2:4; 디모데후서 2:25; 3:7; 디도서1:1; 히브리서 10:26; 베드로후서 1:2, 3, 8).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2:20의 문맥과 신약 헬라어 성경 여러 곳에서 에피그노시스가 사용된 방식을 볼 때, 이 거짓 교사들은 왕국의 말씀에 대한 지식에 이르렀다가 돌아섰고, 자신들이 한때 받고 이해했던 메시지에 대해 거짓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베드로가 경고하는 것은 바로 이런 부류의 교사들, 즉 모세 시대에 열두 정탐꾼 중 열 명이 선포했던 ‘악평’과 유사한 메시지를 선포하는 교사들이다(자신들 앞에 놓인 땅에 관한 것들을 보고 이해했던 정탐꾼들[민수기 13:26-33]).

 

그리고 베드로는 주님의 재림과 그분의 왕국 설립을 앞두고 그리스도인의 준비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할 때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를 마무리한다. 베드로는 이전처럼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자신과 야고보, 요한이 그리스도와 함께 산에 있을 때 보았던 것을 암시한다.

 

베드로는 과거와 현재의 세상, 즉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베드로후서 3:6)과 ‘이제 하늘과 땅’(베드로후서 3:7)을 언급함으로써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베드로후서 3:4)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을 잠잠하게 만든다. “그 때 세상[해조차 어두워졌기 때문에 하늘도 포함됨]”은 멸망했고(베드로후서 3:6; 창세기 1:2a), ‘이제 하늘과 땅’도 멸망할 것이다(베드로후서 3:7, 10-12). 그런 다음 베드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산에 있었던 일에 대해 앞서 말했던 것을 암시하며 이 모든 문제를 절정으로 이끈다(베드로후서 1:16-1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알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라[원문 직역: ‘...이 한 가지가 너희의 주의를 벗어나도록 허용하는 것을 멈추라’]”(베드로후서 3:8).

 

베드로후서에는 7중(septenary) 구조가 있다. 산에서의 사건은 ‘엿새 후에’ 일어났는데, 이는 일곱째 날이 될 것이다(마태복음 17:1). 이것은 창세기 1:1-2:3에 있는 기초를 암시하는 것이며,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이 7중 구조야말로 베드로가 베드로후서 3:8에서 언급한 내용이다(두 세상의 멸망에 관한 직전 구절들의 계시를 반영하는 진술[창세기 1:2a; 벧후 3:12]). 창세기의 6일과 7일은 6천 년과 7천 년의 전조가 되며, 마태복음 17:1의 날들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사랑하는 자들아, 이 한 가지가 너희의 주의를 벗어나게 하는 것을 멈추라...”라고 말했을 때 마음에 품었던 정확한 의미다.

 

(베드로후서 3:6에서 ‘그 때 세상’의 멸망은 노아 시대의 물로 인한 지구의 멸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는 과거와 미래의 지구 멸망 사이의 분명한 평행선[베드로후서 3:6, 7]이나 서신의 7중 구조[베드로후서 1:16-18; 3:5-8]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의 멸망은 하늘들도 포함할 것이며, 평행 구조 안에서 과거의 멸망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하늘을 포함했던 유일한 과거의 멸망은 창세기 1:2a의 아담 이전의 멸망이다. 창세기 6-8장의 노아의 홍수는 하늘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지구 바로 위의 물 층이 내려와 지구를 덮은 물의 일부를 제공한 것을 제외하고는]. 또한 노아의 홍수로 초래된 멸망의 주된 강조점은 지구 그 자체가 아니라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멸망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창세기 1:2b-25처럼 지구의 회복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노아 시대에 지구의 멸망이 일어났지만[창세기 6:13], 이것은 창세기 1:2a에서 일어난 멸망과 같은 종류의 멸망이 아니었으며, 베드로후서 3:6에 언급된 것과 같은 종류의 멸망도 아니었다[이 성경 부분에서 서신의 7중 구조와 과거 및 미래 멸망 간의 평행선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베드로후서 3:6, 7의 두 멸망은 7,000년의 기간을 두고 나뉘어 있다. 하나는 7,000년이 시작되기 전의 어느 시점에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7,000년이 시작될 때 하늘과 땅 모두의 회복이 필요했다. 다른 하나는 7,000년이 끝날 때 일어날 것이며, 이로 인해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창세기 1:2b-25; 베드로후서 3:10-13].)

 

거짓 교사들 — 현재

 

1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 ‘왕국의 말씀’, ‘복음의 소망’, 바울의 ‘복음’, ‘혼의 구원’(마태복음 13:19; 로마서 16:25; 고린도후서 4:3, 4; 골로새서 1:23; 디모데전서 1:11; 히브리서 10:35-39) — 모두 동일한 핵심 가르침을 지칭함 — 은 교회 내에서 보편적으로 선포되었다. 바울은 골로새서 1:23(로마서 10:18; 골로새서 1:5, 6)에서 이 메시지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이 메시지가 교회 전체에 선포되었음을 의미한다(이 메시지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에게 선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거의 완전히 역전되었다. 교회에서 이 메시지는 좀처럼 듣기 힘들다. 마태복음 13:33에서 세대(dispensation)의 아주 초기에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은 누룩은 그 파괴적인 일을 해왔고, 교회 전체가 부풀어 오를 때까지 계속 일할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의 누룩으로 묘사된 파괴적인 사역과 요한계시록 2, 3장에 묘사된 타락은 모두 일반적인 성경 교리가 아니라 ‘왕국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다. 이는 문맥 안에서 이해할 때 두 성경 부분 모두에서 분명하다. 마태복음 13:33에서 이 문제는 하늘들의 왕국 및 왕국의 말씀과 관련이 있으며(마태복음 13:11, 19), 요한계시록 2, 3장에서 이 문제는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다가올 왕국을 염두에 둔 행위 및 이기는 것과 관련이 있다(요한계시록 1:10-20; 2:2, 7, 9, 11, 13, 17, 19, 26; 3:1, 5, 8, 12, 15, 21).

 

따라서 누룩의 역사 때문에 교회의 왕국 말씀 선포 상태는 이 세대의 끝에 라오디게아 교회가 묘사하는 상태, 즉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요한계시록 3:14 -22)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메시지 — 과거, 현재

 

앞서 살펴본 측면에서, 오늘날 ‘왕국의 말씀’에 대한 거짓 메시지는 지식보다는 오히려 무지에서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왕국의 말씀에 관한 메시지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이 주제를 다루는 수많은 구절들을 다룰 때 성경에 대한 온갖 종류의 곡해를 낳게 된다.

 

(좋은 예로 소위 ‘주재권 구원(Lordship Salvation)’ 가르침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왕국의 말씀’과 관련된 구절들을 취하여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메시지에 적용하려고 시도한다. 이는 한 복음[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다른 복음[하나님의 은혜의 복음]마저 부패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메시지는 현재 자유주의와 소위 근본주의 진영 모두를 막론하고 교파 전역에서 널리 선포되고 수용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교파가 처한 현실이다. 그리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성경에 따르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될 것이다. 누룩은 전체가 부풀 때까지 계속해서 그 파괴적인 일을 할 것이며(마태복음 13:33),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상황은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 그분은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인자[메시아적 칭호]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그 믿음(the faith)’]을 보겠느냐?”(누가복음 18:8). 헬라어 텍스트에 쓰인 질문의 방식에 따르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요’다. 인자는 재림의 때에 이 땅에서 ‘그 믿음’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 믿음’이라는 표현은 왕국의 말씀과 관련된 가르침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다(디모데전서 6:11-15, 19; 디모데후서 4:7, 8; 유다서 1:3; 누가복음 18:8의 문맥적 배경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교회에서 선포되는 것을 보지 못하실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1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선포되었던 핵심 메시지이며, 세대 전체에 걸쳐 교파에 선포되었어야 하는 핵심 메시지다.

 

그러나 오늘날 교파의 현실은 너무나 멀어져서 성경적 관점의 교회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왕국의 말씀은 무시당하고, 멸시당하며, 거부당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메시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선포하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다 해왔다. 따라서 누룩의 발효 과정이 끝나는 시점에 ‘왕국의 말씀’에 대한 거짓 가르침은 이 과정이 시작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성취되고 있다.

 

초기에는 이 메시지를 이해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따라서 거짓 메시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메시지를 이해하는 그리스도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이 주제에 대한 현재의 침묵은 거짓 메시지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그리고 세대 초기의 메시지에 대한 적대감과 세대 말기의 메시지에 대한 침묵은 모두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데 일조할 것이다. 인자는 재림하실 때 땅에서 ‘그 믿음’을 보지 못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