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해 행하신 온전한 사역(갈보리에서 시작하여 그분의 재림을 둘러싼 사건들에서 정점에 이르는 사역)에 대해 성경에 계시된 틀 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구원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서로 다르고 구별되는 세 가지 나타나심을 언급한다. 한 번의 나타나심은 과거에 있었고, 한 번은 현재에 있으며, 한 번은 미래에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나타나심은 히브리서 9장 끝부분의 동일한 문맥 안에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나타나심들은 앞서 공포된 아들의 사역, 즉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히브리서 2:10)에 관한 사역과 일치하며, 선지자로서의 주님의 사역(과거), 제사장으로서의 사역(현재), 그리고 왕으로서의 사역(미래) 사이의 올바른 상호 관계를 제공한다.
과거의 나타나심
“…이제 자기를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시대들의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브리서 9:26b).
구속받지 못한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어 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그러나 구속받은 인간은 살아났으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었다(에베소서 2:1-7; 골로새서 2:13-15).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타락 직후 창세기 3:15에서 약속된 구속주의 완성된 사역을 통해서만 오직 성취되었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 여기에는 아담의 후손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이 포함되었다(로마서 5:12-14).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에덴에서 제정된 죄의 대가는 사망이다(창세기 2:17; 로마서 3:23; 5:12; 6:23).
인간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다시 돌려놓기 위해서, 구속주는 반드시 죄의 대가를 지불하셔야만 합니다. 구속주께서 반드시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셔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그분의 아들을 보내시어,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게 하신 이유다(히브리서 9:26-28).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 15:3; 고전 3:2 참고). 찬송가 가사처럼, “예수님께서 모두 지불하셨으니, 내 모든 것 주께 빚졌네…”
그분의 완성된 구속 사역은 인간이 할 일을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는데, 이는 단순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죽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 외에도, 구속받지 못한 인간은 성경에서 망가진 피조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망가진 피조물의 회복과 관련하여 어떻게 그분의 사역을 시작하시고 수행하시는지에 대한 패턴은 창세기 시작 부분에 영원히 세워져 있다.
“…흑암이 깊음[히브리어 테홈tehom, 망가진 피조물 전체를 덮고 있는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물을 뜻함]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창세기 1:2b-4; 요한복음 1:5; 고린도후서 4:6).
이 구절에서 회복을 가져온 모든 사역은 온전히 신성한 개입을 통해 성취되었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망가진 피조물을 어떻게 회복시키시는지에 대한 변치 않는 패턴을 세워준다. 따라서 그 이후의 망가진 피조물인 인간도 반드시 이 세워진 패턴에 따라 회복되어야만 한다.
모든 사역은 인간의 구속주에 의해 이미 성취되었다. 인간은 이 사역에 대해 오직 완전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이미 성취하신 것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사도행전 16:30, 31).
현재의 나타나심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브리서 9:24).
왕권을 받기 위해 떠나신 때부터 왕권을 차지하고 돌아오실 때까지의 기간 동안(누가복음 19:11-27),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실 뿐만 아니라(히브리서 1:13),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서 대제사장 사역을 행하고 계신다(히브리서 4:14-16).
그분은 그분의 원수들이 그분의 발등상이 될 날을 기다리시며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고, 아버지께로부터 나라를 받으실 것을 고대하고 계신다(다니엘 7:13, 14; 요한계시록 11:15).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이루는 자들에게 현재적인 깨끗함을 입히시기 위해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고 계시며, 장차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나타내실 날을 고대하고 계신다(에베소서 5:26, 27; 히브리서 1:13; 요한일서 1:6-9).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그분의 흘리신 피를 근거로 지성소에서 사역하신다. 이 피는 타락한 인간에게 구속을 제공하기 위해 갈보리에서 흘려졌으며, 이 동일한 피가 구속받은 자들에게 현재적인 깨끗함을 제공하기 위해 현재 하늘 성소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 있다.
구원받은 인간은 여전히 옛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고 사망의 몸 안에 거하고 있으므로, 현재의 나그네 길 동안 늘 더러워지기 쉬우며, 따라서 지속적인 깨끗해짐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깨끗해지는 수단을 제공하셨고, 오늘날에도 똑같이 그렇게 하셨다. 구약의 제사장들에게는 물이 가득 찬 상단과 하단 대야로 구성된 놋두멍이 주어져,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백성들을 위해 사역할 때 그들의 손과 발을 씻도록 했다. 그리고 제사장들에 의해 매일, 그리고 대제사장에 의해 속죄일에 피의 제사가 드려져, 이전에 죽임을 당한 유월절 양의 피를 적용했던 자들에게 깨끗함을 제공했다(히브리서 7:27; 9:6, 7, 22).
그러나 신약의 제사장들에게는 과거의 희생제물이 주어졌으므로, 더 이상의 추가적인 제사는 결코 필요하지 않다. 이것은 이전에, 모형에서처럼, 죽임을 당한 유월절 양의 피를 적용했던 자들에게 깨끗함을 입히기 위한 —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이다(히브리서 7:27; 10:12-22).
선지자로서의 그리스도의 과거 사역은 제사장으로서의 그분의 현재 사역을 가능하게 하며, 두 사역 모두 장차 있을 동일한 것, 즉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미래 사역을 내다본다.
언젠가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현재 사역을 끝내시고 지성소에서 나오실 것이다. 먼저는 그분이 구속하셨고 현재 사역해 주고 계시는 자들과 셈을 하실 것이며, 그 후에는 그분이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신 “많은 아들들”과 함께 땅을 다스리실 것이다.
미래의 나타나심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인간은 통치권을 가지도록 창조되었으나 타락하여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구속은 구속받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자신이 타락으로 잃어버렸던 그 위치를 차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기를 희생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과거의 나타나심, 우리를 위해 하늘 성소에 계시는 그분의 현재의 나타나심, 그리고 그분의 모든 영광 중에 임하실 미래의 나타나심은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어느 하나도 다른 것과 분리될 수 없다.
이 세 가지 나타나심과 관련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그리스도의 과거의, 완성된 사역에 근거함). 우리는 구원을 받고 있다(그리스도의 현재의, 계속되는 사역에 근거하며, 이는 그분의 과거 사역이 있기에 가능함). 우리는 곧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미래 사역이며, 그분의 과거 두 사역이 이것을 가능하게 함). 즉, 그리스도의 세 가지 나타나심은 구원의 이 세 가지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베소서 2:8, 9; 히브리서 9:26b). 현재(고린도전서 1:18; 히브리서 9:24). 미래(히브리서 1:14; 9:28).
사람이 일단 구원을 받으면(과거에, 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사역을 통해), 그 사람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진다. 그 후 그는 구원의 현재적 측면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과거 사역에 근거하지만, 하늘 성소에서의 그분의 현재 사역과 연결됨). 그리고 이것은 구원의 현재적 측면이 미래의 어느 시점(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결실을 맺고 실현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구원의 과거 측면은 인간의 영과 관련이 있다. 인간은 영, 혼, 몸으로 구성된 삼분법적 존재이며, 인간의 이 세 부분은 각각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구원의 대상이 된다.
에덴에서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선언대로 죽었다(창세기 2:17). 그의 몸은 계속 살아 있었고, 그의 혼(레위기 17:11에 따른 피 속의 생명 원리) 역시 계속 살아 있었기 때문에, 인간이 영적인 죽음을 경험했으며 이 영적인 죽음이 추후에 육체적인 죽음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음이 분명하다.
오늘날 구속받지 못한 인간은 구속받지 못한 혼을 담고 있는 구속받지 못한 몸을 소유한 채 영적으로 죽어 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이며(에베소서 2:1, 5), 현재와 미래의 구원 측면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생명이 부여되어야 한다. 그 사람은 반드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야 한다(요한복음 5:24).
구원의 현재와 미래 측면은 인간의 혼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영적으로 살아난(영의 구원을 실현한) 자들만이 혼의 구원과 관련된 것들에 들어갈 수 있다. 그때에야 비로소 혼의 구원이 시야에 들어온다.
인간의 혼은 구원을 받아 가는 과정에 있으며, 이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인간의 몸의 구속을 이루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로마서 8:18-23). 현재 시기 동안의 혼의 구원은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후에 사는 삶과 분리할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서 9:28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언급된 구원이며, “그분을 바라는 자들[집주인의 돌아옴을 기다리는 집 안의 신실한 종들]”에 의해 실현될 구원이다.
히브리서는 혼의 구원을 다루는 책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된[영의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두 번째 나타나실[혼의 구원을 이루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림을 그분의 재림과 분리하여 다루는 것은 완전히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스도의 과거 사역에 관한 메시지를 그에 따르는 그리스도의 현재 및 미래 사역에 관한 메시지와 분리하여 선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영적 재앙을 가져올 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에 “자기를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나타나셨고, 지금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며, 언젠가는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이다.
이 세 가지 나타나심은 인간이 태초에 창조되었던 본래의 위치로 궁극적으로 복귀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된 하나의 나눌 수 없는 단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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