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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임재 안으로

“그가 나가서” /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한 실패의 결과들

“그가 나가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한 실패의 결과들

 

그리스도인이 걸어갈 수 있는 하향길(결국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과 높여짐을 받는 자리에 이르지 못하고, 거부와 수치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길)을 보여주는 성경의 가장 좋은 실례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못 박히심 직전에 기록된 사도 베드로의 행동이다.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태복음 26:58a, 69, 70, 72, 74, 75).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만찬이 끝난 후, 자신과 제자들이 감람산으로 나아가셨을 때, 앞으로 몇 시간 동안 그들이 모두 자신으로 인해 ‘실족하게 될[상처를 입게 될](be offended)’ 것임을 알리셨다. 그리고 그때부터 베드로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심히 통곡하는 모습이 보이기까지, 베드로가 어떻게 자신을 이러한 상태에 이르게 방치했는지를 보여주는 7가지 단계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마태복음 26:31-75).

 

(‘실족하다, 상처 입다’라는 단어 [헬라어: 스칸달리조(skandalizo)]는 반대를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여 결국 넘어지게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단어는 마태복음 13:21에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이며, 누가복음 8:13에 따르면 떨어져 나감, 즉 배반(apostasy)으로 이어질 수 있다. 누가복음 8:13의 ‘배반하다[떨어져 나가다]’라는 말은 헬라어 본문에서 아피스테미(aphistemi)를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영어 단어 ‘아포스타시(apostasy)’의 유래가 된 명사 아포스타시아(apostasia)의 동사 형태다.)

 

제1단계

 

베드로는 제자들이 앞으로 행할 일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전에도 다른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가 주님께 책망을 받은 적이 있었다(마태복음 16:21-23). 그 후 베드로는 반대 세력 때문에 자신이 걸려 넘어지거나 떨어져 나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야고보서 4:13-15).

 

그리고 베드로가 바로 그날 밤 자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잇따른 말씀에 대해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응답했고, 다른 제자들도 그와 같이 말했다. 그러나 그 후 몇 시간 동안 ‘모든 제자’가 그분을 버리고 도망하게 된다(마태복음 26:33-35, 56).

 

(베드로는 그리스도께 대답할 때 헬라어 본문에서 강한 부정형을 사용했다. 본질적으로 그는 “나는 결코, 단 한 번도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결코, 단 한 번도 당신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했다.”)

 

제2단계

 

반대 세력 때문에 떨어져 나가거나 주님을 부인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제자들의 장담이 있은 후,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다. 동산에 도착하신 그분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러나 예수께서 기도하러 비껴가셨을 때, 제자들은 깨어 있기보다 잠에 빠져들었다. 이에 주님께서는 그들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망하셔야 했다(마태복음 26:36-41).

 

제3단계

 

유다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넘겨주었고, 종교 지도자들이 파견한 ‘군대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그리스도를 잡으러 동산으로 들어왔다. 그들을 본 베드로는 칼을 빼어 자신의 이전 장담을 이뤄보려고 육신의 팔, 즉 인본주의적인 수단에 의지했다.

 

전투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물리적인 수단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려 했다(그리스도께서 홀을 잡으시고 물리적으로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날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미래의 일이다[시편 110:1-7; 시편 2:1-12]).

 

베드로는 자신의 헛된 육신적 노력으로 대제사장의 종 중 한 사람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행동을 완전히 거부하시며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말씀하셨고, 그 종의 귀를 고쳐주셨다(마태복음 26:47-55; 누가복음 22:50, 51).

 

제4단계

 

자신들이 행할 바를 장담하고(주님께서는 다르게 말씀하셨음에도), 깨어 기도해야 할 때 잠을 자며, 이전의 장담을 실행하기 위해 육신의 팔에 의지했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이러한 행동들은, 결국 제자들로 하여금 이전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바로 그 일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그 후, 그들의 행동이 정점에 달하여 예수께서 무리에게 붙잡히시자, “모든 제자가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태복음 26:56).

 

제5단계

 

그 후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멀찍이’ 따르기 시작했다. 그는 칼을 잡았고, 그것은 결국 그의 파멸을 불러오려 하고 있었다. 그는 육신의 사람에게 의지했고, 자신이 심은 것을 거두는 과정에 있었다(마태복음 26:52; 갈라디아서 6:7, 8).

 

그의 이전 행동들 때문에,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핵심 요원으로서 누렸던 친밀함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마태복음 17:1; 26:37, 58).

 

제6단계

 

예수께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심문을 받으시러 대제사장의 집 안으로 끌려가셨을 때, 그분을 ‘멀찍이’ 따르던 베드로는 바깥 뜰에 머물렀다. 그는 안에서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보다, 바깥에서 원수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마태복음 26:69; 누가복음 22:54, 55).

 

제7단계

 

베드로의 과거 행동들은 이제 그를 넘어짐의 마지막 지점으로 이끌었다.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한 사람이라는 추궁을 받았을 때, 베드로는 세 번에 걸쳐 다른 상황에서 자신의 주님을 부인했고,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대로 곧바로 닭이 두 번째로 울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재판정’으로(요한복음 18:28) 끌려가시던 주님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바라보셨고, 베드로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냉혹한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마태복음 26:34, 69-74; 마가복음 14:72; 누가복음 22:61).

 

(이 구절에서 주님의 바라보심은 단순히 슬쩍 보신 것이 아니었다. 헬라어 본문에 사용된 단어 [엠블레포(emblepo) - ‘보다’라는 뜻의 헬라어 블레포(blepo)의 강화된 형태]는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눈을 고정하시고 뚫어지게 살피는 모습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밀한 조사를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전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 후 베드로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누가복음 22:62].)

 

베드로는 자신의 과거 행동들 때문에 기쁨 대신 슬픔이 있는 바깥 자리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빛 대신 어둠이 있는 자리에 처하게 된 것이다(마태복음 26:31, 40).

 

베드로는 자신의 과거 행동들 때문에 빛이 있는 안쪽 공간에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지 못하고, 어둠의 공간인 바깥에 처하게 되었다. 베드로는 어두운 데[바깥 어두운 데] 처하게 된 것이다(마태복음 8:12; 22:13; 24:51; 25:30).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우리가 참으면 [‘인내로 견디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디모데후서 2: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