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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임재 안으로

바닷가의 복들

 

나는 언제나 바다를 사랑해 왔다. 어린 시절 나는 서산에서 자랐는데, 우리 가족은 여름과 겨울마다 만리포, 연포의 바닷가로 가곤 하였다. 나는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것에 결코 싫증이 나지 않았다. 밀려왔다 부서지는 파도의 리듬을 즐기고, 조개껍데기를 찾고, 손가락 사이로 모래를 흘려보내며, 창조주의 놀라운 설계를 감탄하며 바라보곤 하였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10).

 

몇해 전 우리 가족은 근흥의 바닷가에서 가족 모임을 가졌다. 그 방문에 앞서, 주일학교에서 읽은 한 성경 구절 속의 “바닷가에(by the sea)”라는 표현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비슷한 표현들이 나오는 구절들을 찾아보고 그 문맥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놀라운 것들에 압도되었다(시편 119:18).

 

“바닷가에(by the sea)”라는 표현이 사용된 모든 경우마다, 주님께서 친히 주관하신 놀라운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은 관련된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나 개인에게도 풍성한 복을 가져다주었다.

 

바닷가에서 셈하다

 

가장 위대한 약속들 가운데 하나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으로, 바닷가의 모래알을 셈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히브리서 11:12은 이렇게 말한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부터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겼느니라.”

 

이것은 수천 년에 걸쳐 이루어져 왔으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놀라운 성취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그것이 전개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약속 속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통하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복을 본다. 그 약속으로부터 셀 수 없는 무한한 복들이 흘러나온다. 바다의 모래로 상징되는 아브라함의 지상적 복뿐 아니라, 하늘의 별들로 상징되는 하늘의 신부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복도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은 창조주로부터 직접 구원받은 죄인에게 흘러가는 것이며, 나 또한 그 가운데 포함된다.

 

바닷가에 진을 치다

 

가장 위대한 구원들 가운데 하나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바닷가에 진을 친 가운데 이루어졌다. 출애굽기 14:1, 2, 13, 14에서 우리는 읽는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또 모세는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날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스라엘 자손은 뒤에서는 애굽 군대에게 쫓기고 있었고, 양옆은 광야로 막혀 있었으며,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순종을 존중하시고 친히 그들을 위하여 싸우셨으며, 그분의 놀라운 능력으로 수많은 백성을 구원하셨다. 그 결과 출애굽기 15:2의 찬양이 터져 나왔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그 구원 안에서 우리는 죽임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출애굽기 12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이 세상의 권세 아래에서 이끌어 내시고, 바닷가의 일시적인 진영 너머에 있는 풍성한 복들로 인도하시는 놀라운 계획을 본다.

 

이 복들은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는 자들이 장차 구주와 함께 거할 하늘 본향에도 미치는 것이다.

 

바닷가를 거니시다

 

가장 위대한 “부르심” 가운데 하나는 주님께서 바닷가를 거니실 때 이루어졌다. 그 부르심은 평범한 두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주어졌다. 마태복음 4:18-20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갈릴리 바닷가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이 두 사람의 인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그 변화는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그들은 평생을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바쳤고, 자신들을 부르신 그분을 위하여 죽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부르심 속에서 우리는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도 동일하게 들려주시는 부르심을 본다. 이 바닷가에서 주어진 부르심은 이 땅의 모든 다른 부르심들을 압도하며, 영원한 복으로 인도한다.

 

바닷가에 앉으시다

 

가장 위대한 메시지들 가운데 하나는 주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앉으셨을 때 선포되었다. 마태복음 13:1, 2은 말한다.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거늘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이 메시지는 주님께서 약속된 메시아로서 거절당하신 이후에 전해졌다. 그 메시지는 유대인들에게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 확장되었다. 우리는 이 메시지 속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비롯하여, 구원받은 죄인이 들어가게 되는 복된 위치를 보여 주는 귀한 비유들과 유사한 말씀들을 듣는다. 바닷가에 앉아서 전해진 이 말씀은 얼마나 놀라운 메시지인가. 그것은 값진 진주를 사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거절당하신 메시아께서 전하신 메시지였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이다!

 

바닷가에 머물다

 

가장 위대한 정결케 하심들 가운데 하나는 베드로가 바닷가에 머물고 있을 때 나타났다. 사도행전 10:5, 6은 말한다.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바닷가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여기서 주님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메시지와 약속이 단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 보여 주신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직접 주어진 약속 밖에 있던 부정한 자들에게까지 미친다. 바닷가의 작은 집에서 문이 열렸고,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과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이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모든 사람에게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그 복은 당시 가장 잔혹한 제국 가운데 하나를 섬기던 백부장에게까지 미쳤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인정하며 자신을 낮추었다. 이 “바닷가에서의 정결케 하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높이게” 하였다. 그것은 기록자와 독자 모두의 역사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바닷가의 복들

 

“바닷가에(by the sea)”라는 표현이 사용된 이 다섯 가지 사례는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들 가운데 일부를 보여 주며, 그 사건들로부터 풍성한 복들이 흘러나온다. 우리가 바닷가에 앉든지, 서 있든지, 걷든지, 진을 치든지, 머물든지 간에, 우리는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으로 복 주셨다”(에베소서 1:3)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이미 모든 영적 복을 받은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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